자본의 모습이 변했다
2015년 톰 구딘이라는 미래전략가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본의 모습이 변했다.' 무슨 말이냐면, 전통적으로 자본이란 말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노동자는 생산 수단 대신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자본가와 노동자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생산수단의 유무입니다. 노동자는 노동력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자본가의 억압과 착취를 견뎌야 하고,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갖고 있기에 노동자에게 부당한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이라는 이 전통적인 생각이 플랫폼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택시회사인 우버는 단 한 대의 차량도 소유하고 있지 않고, 세계에서 제일 큰 숙박업체라고 하는 에어비앤비는 부동산을 단 한 채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세계 최대 미디어 기업인 페이스북은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큰 소매업체 중 하나인 알리바바는 상품을 쌓아두는 창고나 물품 목록이 없습니다. 자본이 생산 수단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지 않거나 생산 수단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런 일은 특히 공유경제라고 부르는 부분에서 더 확연히 나타나는데, 택시 숙박업 말고도 배달 청소,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단순 노동 등과 같은 분야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공유 플랫폼의 장단점
예를 들어, 택시회사는 운전자들에게 차량이라는 생산 수단을 제공합니다. 더불어 차량을 유지 관리하는 비용도 부담하죠. 하지만 우버에서 일하려면 차량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차량을 유지관리하는 비용도 운전자 바로 노동자들이 부담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예요. 방을 제공하려면 방을 소유하고 있어야만 하고, 배달을 하려는 사람은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유지 비용도 스스로 부담해야 합니다. 예전엔 이 모든 게 자본이 부담하던 비용이었는데 지금은 이 모든 비용을 공유경제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들이 부담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본이 더 이상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생산 수단의 소유 권리를 주면서 관련 비용도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산수단의 이전이 아주 놀라운 방식으로 순식간에 일어난 거죠. 뿐만 아니라 독립 사업자이기 때문에 고용보험, 의료보험, 산재보험 등과 같은 모든 사회보장 비용도 알아서 처리해야 합니다. 플랫폼 분야의 종사자들은 일터에서 노동자로 일하지만 법적으로는 독립 사업자 즉 사장님입니다. 반면 기업들은 중간에서 단순히 수수료만 챙기는 노동을 중개하는 업체에 불과하다는 게 이 공유 플랫폼들의 주장입니다. 간단히 말해 보호가 필요한 곳에선 독립사업자로 작업이 필요한 곳에선 노동자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산업사회와 소비사회의 실업
소득은 소비력으로 이어지는데 산업사회와 소비사회에서의 실업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불안정 고용의 소비 사회에서 실업은 단지 직장을 잃는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소비력을 잃고 결국 사회의 관심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실직 후 직업을 다시 못 찾는 사람들은 혹은 정규직 노동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에 막힌 사람들 중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2기계 시대가 만들어낸 플랫폼 노동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한 가지 더 짚어볼 것은 디지털 기술이 부자나 더 부자가 되게 하는 즉 소득 독점의 시대를 열었다는 겁니다. 저자는 그 예로 2000년에 세무 업무를 대행해 주는 미국의 터보텍스 앱을 이야기합니다. 세무사에게 지불하는 금액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알아서 일 처리를 해주는 이 앱이 큰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세무사들이 직업을 잃거나 수입이 줄어든 반면 이 앱을 개발한 개발자는 엄청난 불을 거머쥐었다는 것입니다. 터보텍스의 사례는 디지털 기술의 특성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저비용으로 가치 있는 일을 모두가 동일하게 수행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이로 인해 사회는 풍요로워지지만 이전에 가치 있는 일을 수행하던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으며, 일자리가 줄어든 만큼 절약된 비용은 소수의 사람이 독점하게 됩니다. 디지털 기술이 불평등을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이유가 바로 이거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택배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가 전통적인 노동자의 삶에서 배제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노동자입니다. 특히 플랫폼 노동을 통해 드러나는 제2기계 시대의 문제는 사용자도 노동자도 아닌 모호한 노동의 형태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가난이 온다. 마지막 6장에서는 제2기계 시대의 인간다운 삶의 조건과 이 시대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서 다섯 가지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는 불안한 미래로 내몰리는 현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 놓은 21세기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책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