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오전 7시 와이너는 기차를 타고 시카고에서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향하던 중 간신히 침대 칸에서 깨어났지만 이불 밖으로 나가기는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철학적인 문제라면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마르쿠스는 우연히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가 된 인물이자 철학자였습니다. 더구나 그는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는데요, 침대에서 미적거렸고 낮잠을 잔 뒤 오후에 대부분의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는 잉글랜드에서 이집트까지 그리고 대서양 해안에서 티그리스 강까지 이어지는 대제국을 지배한 황제였습니다. 또 거의 50만 명에 달하는 군대를 지휘하면서 게르만족과 오랜 세월을 싸워야 했습니다. 또한 마르쿠스는 제국과 군을 통치하면서 자신의 악마와도 싸워야 했는데 바로 그 악마는 아침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 새벽에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만 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마르쿠스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마르쿠스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사명이지 의무가 아닙니다. 마르쿠스는 스스로에게 생각을 그만두고 행동에 나서라고 누차 촉구했습니다. 그래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어요? 먼저 한 발을 이불 밖으로 꺼내서 바닥에 딛고 나머지 발을 같은 순서로 꺼낸 다음 몸을 일으키기만 하면 되는데, 이게 뭐라고 어렵네? 그렇게 마르쿠스는 침대에서 나옵니다.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와이너는 소크라테스의 외모 공격도 서슴지 않습니다. 못생긴 남자였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아테네에서 가장 못생긴 남자였고, 소크라테스는 외모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성격도 특이해서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철학자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추종자를 모으는 데 관심이 없었고, 제자들이 다른 철학자에 대해서 물으면 소크라테스는 기꺼이 알려줬습니다. 또한 그 어떤 지식이나 이론 또는 신조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단 한 글자도 쓴 적이 없으니 당연히 책을 쓴 적도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대화와 토론을 선호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책을 반대했는데요, 그 이유는 책이 출간되면 고치기도 힘들고, 사람들은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을 무턱대고 진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아는 것은 주로 그의 제자 플라톤이 남긴 얼마 안 되는 고대의 자료 덕분입니다. 그래서 와이너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의 사상 같은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만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보다 방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저자는 이를 대화로 지칭합니다. 그리고 현대 철학자 로버트 솔로몬은 이를 현명한 훈수질이라고 부릅니다. 이 모든 현명한 훈수질에는 하나의 목표가 있었는데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만큼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의 질문의 핵심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의미를 찾는 것에 있었습니다.
간디처럼 싸우는 법
간디는 폭력 앞에서 비폭력을 외친 투사였습니다. 그리고 비폭력의 창조성을 중요시했는데 비폭력의 창조성이라니 하는 의문이 들 텐데요, 즉 간디는 언제나 새롭고 혁신적으로 싸우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 헤맸습니다.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서 영국과 싸웠고, 편협한 외국인과 그리고 인도인과도 싸웠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싸움은 싸우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싸움이었는데요, 간디는 싸움을 필요 악이 아닌 필요 선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기기 위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간디는 1930년 영국의 소금법에 대한 불복종 운동으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1882년 영국이 제정한 인도의 소금법은 즉 한국의 담배처럼 정부가 소금 생산을 독점해서 세금을 매기는 데 대한 불복종 운동이었습니다. 간디는 1930년 8월 12일 80여 명의 추종자를 이끌고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소금 행진은 인도의 독립을 향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간디는 행진에 공감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간 건데요, 결국 이 행진이 끝날 무렵 대열은 6만여 명으로 불어났고, 진압하고 연행하던 총독 정부는 대응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영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도 간디의 위력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간디와 추종자들은 본베이 근처에 있는 다라사나 소금 공장을 향해 다시 걸어갑니다. 그곳에는 경찰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경찰은 물러나라고 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경찰들은 행진하는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강철을 입힌 곤봉으로 머리를 내리쳤고, 곤봉에 맞은 사람들은 대자로 쓰러졌으며, 아예 의식을 잃거나 부서진 두개골과 어깨를 붙잡고 고통에 몸부림쳤습니다. 간디의 추종자들은 왜 맞서 싸우지 않았던 걸까요? 간디라면 그들이 맞서 싸웠다고 그저 비폭력적으로 맞서 싸운 것뿐이라고 대답했을 겁니다. 간디의 추종자들은 자신의 존재와 평화적 의도로 경찰에 맞섰으며, 물리적으로 맞서 싸웠다면 경찰은 더 크게 분노했을 것이고, 경찰의 마음속의 분노는 정당화됐을 것입니다. 간디는 그렇게 폭력을 키우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소금 공장 급습과 경찰의 잔인한 대응 이후에 겉으로는 사실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이후 도덕적 우위를 잃었고, 폭력에 폭력으로 답하기를 끝까지 거부한 사람들에게 폭력으로 진압하고자 하는 욕망도 함께 잃게 된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 저널리스트 에릭 와이너가 쓴 철학 에세이인데 우리나라에 출간된 직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책에는 14명의 철학가가 등장합니다. 와이너는 자신의 여행길에 철학자들을 자유롭게 소환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힙니다. 저처럼 철학책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